작성일 : 19-01-06 15:40
누가복음 강해 3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  

누가복음 강해 32

누가복음 6장1-5


관리자 19-01-06 15:40
답변  
예수님의 안식일

누가복음 6:1-5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쌔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통과해 가기는 중이셨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규례를 모를까요? 제자들은 안식일 규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식일 날 하지 못할 일을 했을까요? 물론 마태복음 12:1절에서는 제자들이 시장하여 그렇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설명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러한 설명을 빼고 누가를 통해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누가복음 저자 누가가 의사이기 때문에 기록을 세밀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전혀 세밀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뭉텅이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상상을 하겠지요. ‘안식일인데 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손으로 비비어 먹었을까?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시장해서 그렇게 했겠지.’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과연 안식일날 이삭을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제자들도 안식일 규례를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시장해도 그렇지 어떻게 율법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안식일날 이삭을 손으로 비비어 먹기를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이유가 사도행전에 충분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봅시다.
9절 이하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배가 아주 고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 준비하는 동안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비몽사몽간에  하늘에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배가 고프니 먹는 생각 간절하겠지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릇 안에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 거룩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겠습니까? 제가 좀 오바를 하지요.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없잖아요. 그러나 베드로가 시장했다는 기록을 한 이유가 있을게 아닙니까? 왜 시장했다는 표현을 기록해 두었을까요?

사람이 시장하면 무엇이든지 먹고 싶지요. 지금 그러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면, ‘소리가 있어 잡어 먹으라’고 할 때 자신은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자신은 언제든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보게 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전이나 후에도 율법대로 살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매우 배가 고프지만 비몽사몽간에 나타난 거룩하지 못한 음식은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윗과 전혀 다르지요.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는 말씀에서 다윗은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었습니다.

다윗은 율법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율법을 지킵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배고픈 상태에서는 거룩과 비거룩을 따지겠습니까? 우리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다급한데 사채를 쓸지 말지를 고민하겠습니까? 물론 잠시야 고민하겠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다급하면 이자율이 아무리 높아도 빌려 쓰게 되어 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아무것이나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거절합니다.

그러자 다시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졌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대단하지요. 세 번이나 거절한 겁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세 번째 말씀에 대해서 먹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잖아요. 그러니 베드로의 뜻은 절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가 누굽니까? 오순절 날 성령 충만 받은 주님의 사도입니다. 그런 그가 왜 이렇게 수준 낮은 행동을 하느냐고 우리들은 따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의 의미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말씀이지, 인간이 성령 충만을 소유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교인들은 성령 충만을 자신이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으로 인해 몹시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냐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평소 알고 있는 율법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우리 성경에는 ‘의심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번역해도 됩니다. 그러나 앞의 사건을 보게 되면, 베드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우리들이 짐작할 수 있지요. 그래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베드로는 그 환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행 10:19-20).”
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말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다르지요. 자신의 뜻이 주님의 뜻에 의해 꺾이는 현상을 두고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할 때 베드로가 어떠한 마음가짐이었는지 우리들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하실 때도 베드로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동일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베드로의 마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과 동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가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거룩한 야망 때문이지요. 참고 견디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참고 견디면 언젠가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안식일 날 밀밭 사이로 통과해 갈 때 그들은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된 겁니다. 즉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님의 지시에 의한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래야만 사도행전 10장 말씀과 일치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태도를 우리들이 납득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이 알듯이 사도행전과 누가복음 저자가 동일합니다. 물론 성령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이니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인간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문제지요.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안식일 날 밀밭 사이를 통과해 가셨고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상황을 만드신 겁니다.
모든 만물이 누구를 위해 있고 누구를 위해 움직입니까?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예수님에 의해 다루어집니다. 만일 우리들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빼 버린다면 오늘 본문을 우리 인간 중심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님 되신 입장에서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말씀하시기 위한 주님의 조치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고 먹은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모릅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만 예수님과 함께 밀밭 사이를 통과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먹는 상황에서 어떤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지요. 그래서 앞서 제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셨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 받은 자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율법에 의하면 딱 걸렸습니다. 안식일을 범한 자입니다. 그러니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이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놀랍습니다.

다윗을 끌고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눅 6:3-4).”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21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다윗의 행위를 과장해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 상 21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착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일 것을 요나단을 통해 확인한 후 피한 곳이 놉입니다. 그곳에 성막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했습니다. 좀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예고도 없이 홀로 왔으니 말입니다. 다윗이 거짓말을 합니다.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 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왕의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3절).”

떡 다섯 덩어리는 있어야 함께한 소년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아히멜렉이 이렇게 말합니다.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떡은 자신에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거룩한 떡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거룩한 떡은 오직 제사장만 먹어야 하는 떡입니다. 안식일마다 교체해 나온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입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고 합니다.

문제가 심각하지요. 우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엘리 제사장의 증손인 아히멜렉이 엘리 대제사장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말은 납득할 수 없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아 기름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의 말도 율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대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 곧 제사장만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는(레 24:9) 물려낸 진설병 떡을 주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 본문을 두고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아히멜렉의 요구인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신명기 23:9절 이하를 보게 되면 여호와께서 적을 붙이시는 전쟁을 할 때에 깨끗함을 요구하는 그 조건을 아히멜렉이 요구했다고 주석을 합니다. 물론 그렇게도 볼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보든지 저렇게 보든지 율법 위반입니다.

율법은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히멜렉 대제사장도 그러하고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 모두가 다 율법 위반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합니까? 다윗이 매우 배가 고픈 상황에서, 마치 베드로가 엄청 배고플 때, 제자들이 엄청 배고플 때의 상황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율법을 범하면 될까요? 안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주석을 할 때, 설교를 할 때 다윗을 율법 위반자로 보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름 부어 세운 왕이고, 사울왕은 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은 율법을 위반하면 됩니까?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 나단 선지자가 찾아 왔지요. 지금처럼 율법을 위반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까? 지금은 쫓기는 상황이고 그 때는 한가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릅니까? 율법이 그때 그때 다르게 적용됩니까? 그렇게 되면 율법이 율법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의 불법행위가 정당화 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율법의 본래 목적은 율법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절대 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깨어 버립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보기엔 율법 파기자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면 율법 폐기론자라고 모함 할 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그러한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안식일엔 일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식일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안식일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심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신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지요?

진짜 안식은 예수님이 안식일 율법을 범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심으로 부활하셔서 주가 되셔서 주신다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부정합니다. 모세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이 한분 밖에 없음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율법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는 겁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어졌지, 죄를 범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으라고 주신, 죄가 솟아올라 오라고 주셨다는 겁니다. 오늘 안식일 사건을 보면 그렇지요. 안식일을 주시니 안식일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만 먹어야 하는 진설병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설병은 대제사장 외에는 손 댈 수 없는 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무엘 상 21장 사건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이 사무엘 상 21장 사건을 모를까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사실과 다름도 알고 있지요. 그런데 왜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말하나 사실대로 말하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윗이 마치 대제사장처럼 행세를 했고, 그와 함께 한 자들도 제사장으로 취급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그렇게 한 이유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증거 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행했다는 겁니다.

이런 해석은 당시 바리새인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해석입니다. 오늘날 주석가들처럼, 다윗을 옹호하면서 다윗의 행위도 정당하고, 율법은 율법대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뿐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을 범함으로 안식일의 주인이 증거 됩니다. 주님은 죄인을 찾으려 오셨지 안식일을 지키는 의인을 찾으려 오신 분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을 증거 하려면 안식일을 범하면 됩니다. 죄를 지으면 되는데 사람들은 죄를 안 지으려고 합니다. 선악체계 속에 지배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발 그냥 막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