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29 23:18
골로새서 강해 6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7  
골로새서 강해 65
골로새서 4:12-13

관리자 18-04-29 23:18
답변  
그리스도 예수의 종
골로새서 4:12-13
골로새 출신인 에바브라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닌 사람들은 주의 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40년 전만해도 목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전도사만 되어도 주의 종이라고 불렀지요. 장로님들이 기도할때마다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고,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기도 할 때마다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주의 종을 초청해서 예배드리고, 기도를 받고 했습니다. 

주의 종이라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에바브라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잖아요. 문제는 주의 종,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에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애써 기도합니다. 여기에서 ‘애써ajgwnivzomai’라는 단어는 적과 싸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애써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종이라고 불리는 목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합니까? 정말 애써 기도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성도들의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써 기도합니까? 그들은 무엇과 싸우는 기도를 합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사무엘상 12: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흉내 내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않겠다고 강단에서 말하는 목사들이 많지요. 그러면 왠지 교인들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또 한 가지는 에바브라가 성도들을 위해 많이 수고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수고povno"라는 단어는 큰 고통을 동반하는 수고입니다.

이것도 목사들이 말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의 종이라고 하는 자들이 애써 기도하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고 무슨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까?

교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애써 기도해 주고, 자신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해 주는 목사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여기에서 정답이 나 나왔습니다.
주의 종이라는 자들은 교인들을 위해 애써 기도하고, 주의 종이라는 자들이 교인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는 것은 오로지 교인들을 위한 수고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목사 자신을 위한 기도요 목사 자신을 위한 많은 수고라는 말이 됩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말하느냐고 따질 분들이 있지요.
그 이유는 에바브라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애써 기도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애써 기도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부자 되는 겁니까?
이 땅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겁니까?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는 겁니까?
이 땅에서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 구원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는 겁니까?

목사들이 교인들을 위해 새벽마다 부르짖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그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물론 여러분들이 다 아시겠지요.
교인들 부자되게 해 달라는 기도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아픈 사람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지요. 그래야만 그 사람이 헌금 많이 할 것 아닙니까?
각 가정의 화목을 위해 기도 할 수 도 있고, 가정에서 믿지 않는 식구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예수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교회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믿는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예수입니까? 교회에 나오면 목사가 무슨 설교를 합니까?

교회 설교를 들어 보면 모두가 다 인간 좋아라고 하는 설교뿐입니다. 에바브라처럼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애써 기도하는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마귀와 한 통속이 되어 돈 많이 벌게 해 주시고, 말씀대로 기적을 맛보게 해 주시고,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 아니겠습니까?

모든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니 우리 교인들이 십자가만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까요? 그런 기도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기도를 하게 되면 그 교인을 자기 종 삼을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말 잘 듣는 교인되게 해 달라고 애써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나 에바브라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과 싸우는 기도를 하십니까?
십자가 지시는 것과 지지 않는 것의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라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지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달리 말하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성령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그 기도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몸에서 나오는 기도의 모든 내용이 다 나를 위한 내용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나의 소원과 주님의 소원이 싸움을 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입니다.

기도는 전쟁입니다. 내 것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내 것이 부정당하고 주의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소원하는 전쟁입니다.

에바브라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취미 삼아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영을 따라 그야 말로 성도들이 살아가는 현장이 마귀가 장악해 있는 현장이기에 그 속에서 십자가만 증거하며 살도록 치열한 싸움의 기도입니다.

우린 이런 생각을 하지요. 그걸 왜 에바브라가 기도하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배운대로 하면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데 왜 에바브라가 끼어드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기도 안 듣는 다고 했는데 왜 에바브라가 기도합니까라고. 반문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기도 안 듣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바브라의 기도는 자신의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기도는 자신의 기도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시켜서 하는 기도입니다. 귀 있는 자만 들으시면 됩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나름 똑똑하기 때문에 성경을 배우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 행세 합니다.
십자가 복음 안다고 백날 해도 소용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나오지요.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외에 다른 골로새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지 않을까요? 복음을 아는 우리들은 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루터가 만인 제사장설을 유포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가 감히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마치 그 사람만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성도들도 자신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데 너만 그리스도의 종이냐고 따질 가능성이 아주 높지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에바브라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바브라만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에바브라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의 모습을 설명하는 겁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나는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 라는 말을 못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에바브라를 소개하는 겁니다.

즉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는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의 모습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행위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십자가만 전해 놓고 왜 갑자기 행위를 통해서 구분을 하느냐고 따질 분이 분명 많을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에바브라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을 통해 증거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십자가를 믿어요. 복음을 안다’고 백날 말해도 영적전쟁이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닙니다. 관심이 자기 밖에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특별이 에바브라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에바브라고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성도들, 그리고 히에라볼리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수고를 합니까?
에바브라는 무엇을 얻으려고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키는대로 할 뿐입니다.

지난 주 할례당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그들의 수고와 기도는 가기 배를 채우기 위한 수고와 기도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라의 많은 수고는 십자가 증거 때문에 오해 받고, 미움 받고, 핍박당하는 수고입니다.

많은 수고의 내용이 다르지요. 손할례당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물론 교인들을 위해 기도도 쉬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 목적이 바로 자기 종 삼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수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주의 종들이 다 여기에 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왜 그렇게 다 들어간다고 합니까?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들만 들으시면 됩니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2-13).”

로마서 6: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라고 하십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 육체를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산 존재라는 겁니다. 자신은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와 옛 사람이 공존하면서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옛 사람의 모습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이 바로 새 사람의 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라의 모습은 무엇을 자랑하는 겁니까?
십자가만 자랑하는 모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바브라를 칭찬할 때 에바브라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나는 죄인이고 주님께서 애써 기도하게 하셨고 주님께서 많이 수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십자가 외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 왕이 아말렉과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하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단 가치 없고 질 낮은 것은 가차 없이 진멸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백성의 종이 되었습니다. 종은 자율권을 갖지 못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신다고 하시니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자유인이 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의의 종,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에바브라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은 그가 애써 기도하는 내용과 많은 수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다’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적전쟁의 기도와 십자가만 전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수고가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부를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을 만나 보기가 참으로 어렵지요.
성도는 자신의 안목, 즉 이 세상의 안목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안목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분별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애쓰는 기도는 자신의 몸을 위한 기도, 인간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많이 수고하는 것도 사람들을 좋게 하는 많은 수고가 아닙니다.
이들이 애써 기도하고, 많은 수고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