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22 16:59
골로새서 강해 6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8  

골로새서 강해 64

골로새서 4:11

할례당


관리자 18-04-22 16:59
답변  
골로새서 4장11절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앞서 나온 아리스다고, 마가도 할례당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들만 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보면 할례당이 바울을 얼마나 공격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흑백논리입니다. 좀 배웠다고 하는 자들은 흑백논리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천국과 지옥만 이야기 하면 분노를 냅니다.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전도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수들은 세상에 나온 이론이란 이론은 다 갖고 와서 비싼 돈 내고 다니는 신학생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돈 값을 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 교황이 지옥이 없다라고 하면서 악인은 소멸된다는 말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옛날부터 있어 왔지요.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잇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 3:4-5).”

심판은 없다는 겁니다. 즉 지옥은 없다는 겁니다. 유명한 가서의 노래 가사가 떠 오릅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지요. 가사가 대충 이런 겁니다.

마음으로 그려봐요

천국이 없는걸 상상해봐요
하려고 한다면 그건 쉬운일이죠
발아래 지옥도 없고
우리 위엔 하늘만이 있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나라란게 없다고 상상해봐요
하려하면 힘들지 않아요
죽이거나 죽음도 없고
종교도 없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공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만 이렇게 꿈꾸는게 아니죠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합류해서
세상이 하나가 될거죠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당신이 할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탐욕과 굶주림에 대한 필요도 없고
인류애로 뭉치는
마음으로 그려봐요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진걸 나누는 것을

당신은 내가 공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만 이렇게 꿈꾸는게 아니죠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합류해서
세상이 하나되어 살겠죠

지금 할례당 이야기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세상은 마귀의 종과 주님의 종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들 외엔 사도바울을 엄청나게 공격했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비록 할례당이었지만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한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할례당이 도대체 뭐길에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디도서 1:10절입니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빌립보서 3:2,3절에서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이 말씀에 근거해 보면 할례당은 단순히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 손할례당입니다. 즉 유대인이었던지 이방인이었던지 관계 없이 할례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할례를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행위라는 겁니다.

안식교도 마찬가지지요. 안식일도 영원한 절기라고 했으니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집단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까요? 그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겁니다. 맞는 말 같지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집단으로 몰려가는 겁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얻는다고 하니 또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이런 교리를 갖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곳으로 사람들이 몰릴까요?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례당에서는 이 세 사람 밖에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역사하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할례당에 속하여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할례당은 도대체 무엇을 자랑합니까? 행위를 자랑합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육체를 신뢰합니다. 빌립보서 3장 말씀에 근거한 이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곳에 속한 자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린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반박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반박에 입을 다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맞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말과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는 말과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의 반복입니다. 이것을 한 단어로 말하면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떤 분입니까? 예수님께서 주님이 되셔서 보내신 성령입니다. 그러니 그 성령님이 예수님의 심판주 되심을 증거하지요. 그러니 성도가 하는 모든 일들은 십자가의 능력만 증거하는 봉사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는 말에서 그리스도의 의미와 예수 의 의미를 안다면 그들이 그런 주장을 펼치지 못할 겁니다. 기름 부음받은 분, 구세주 정도로만 생각하니 그런 단어를 사용하면서 십자가를 빼 버리립니다.

그리스도 라는 말은 모든 인간을 부정하는 단어입니다. 모든 인간이 마귀 새끼라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는 말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은 죄 짓는 일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육체를 부인하는 겁니다.

그런데 할례당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봉사한다는 말 자체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단지 그들이 아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자기 몸의 유익.

자신의 몸에 유익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자들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몸의 유익을 위해 예수를 믿었고, 자기 몸의 유익을 위해 할례를 받은 겁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령을 몸에 할례 행하는 것으로 대체해 버린 겁니다.
마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든가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든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단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의인입니다. 그러니 그 의인됨이라는 것이 자기 구원을 위한 의인됨입니다.
이런 모습은 결국 어디를 향할까요?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믿는 목적이 있습니다.

디도서 1:11절을 보게 되면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더러운 이득이라고 하니 인간들 세상에서 말하는 더러운 이득을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복음 장사를 하는 겁니다. 복음을 팔아 돈 벌이 하는 자들,  복음을 팔아 자기 종 만드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누구를 공격합니까? 11절에 보면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집은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냥 개인 가정을 풍비박살내는 그런 집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집을 파괴하는 자들이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이미 확정적입니다.

자기 육체 자랑. 자기 이득 챙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가 성경은 자신들의 축복과 구원을 위해 기록한 것이지 어떻게 예수님을 겨냥해서 기록한 말씀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당은 유대교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열왕기 하9장에 보면 예후가 엘리사의 기름 부음으로 인해 북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왕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이 할지라 이스라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방하니라(왕하 9:6-10).”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그는 자신이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은 말씀대로 성취되면서 예후왕은 자신의 탐욕을 숨기지 않습니다.

말씀을 이용해 왕이 되고자 하는 그 욕망이 발동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거꾸로입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렇다면 왜 할례당이 강세를 띱니까? 사도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할례당이 교회에 주류를 차지합니까? 그 이유는 반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에서 핍박받고 미움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듯이, 성령 받은 자기 백성들도 똑 같은 코스로 살게 하시는 겁니다.

시편 22:16절을 보게 되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에워싼 자들이 누굽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를, 성전을 사수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할례당입니다.

오늘날 왜 할례당 같은 교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에 대해 분낼 것이 아닙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그들이 성행하고 성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야 십자가 사건이 제대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어릴 때 다녔던 교회 목사들이 설교가 몽 땅 할례당 설교였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도 전했지만 그들은 말씀대로 믿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할례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부정할까요? 만일 십자가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부정했다면 교회가 요란스럽지 않겠지요. 그들은 십자가도 말하고, 예수님도 말하고, 부활도 말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다 언급합니다. 물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언급하지요.

결국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합니까?
자기 몸 편안하게 구원받겠다는 겁니다.
돈 챙기겠다는 겁니다.
노후 보장 받겠다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전체가 할례당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