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11 19:52
골로새서 강해 58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3  
골로새서 강해 58

골로새서 4장 2-4

기도에 항상 힘쓰라

관리자 18-03-11 19:52
답변  
기도에 항상 힘쓰라
골로새서 4:2-4
기도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 할 말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해 보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당신 기도 얼마만큼 해? 당신 기도 얼마나 많이 응답 받아 봤어? 나는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고, 나는 기도 한 것에 대한 응답도 많이 받았어. 기도 생활하면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몰라. 어떤 어려움도 다 감사가 된다.” 이런 식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할 말이 많으실 겁니다. 물론 이성적인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기도해 본 적이 별로 없지요.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다 믿어 버렸는데 기도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이미 주님이 알아서 다 하신다고 하는데 내가 기도해서 뭐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라고 합니다. ‘항상 힘쓰라’라는 의미는 확고부동하게 지속하라는 말입니다. 많은 부흥사들이나 목사들이 이런 본문을 갖고 성도들을 후리지요.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항상 힘쓰야 한다고 합니다. 절대 영혼의 호흡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갖다 붙이는 것은 선수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맞는 것 갖지요. 오늘 본문이 그렇잖아요. 데살로니가 전서 5: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도 있잖아요. 기도할 때에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런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들이 성경말씀 밖에 것을 갖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저들의 말에 아멘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 기도가 어디와 연결되는지가 보일 겁니다.

기도, 감사, 전도, 그리스도의 비밀, 매임 이런 단어들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에 대한 기도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 기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기도 내용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들이 있어야 그 사람에 대해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2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사실 이것들은 누가 제공해 줄려고 하는 겁니다. 이것들은 원하지 않아도 다 제공해 줍니다. 물론 그 놈 말만 잘 들으면 그 놈이 알아서 제공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광야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마귀가 시험한 내용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거리 아닙니까? 돌로 떡덩이 만들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세상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했습니다.

인간들은 이미 마귀의 종이기 때문에 마귀가 알아서 이것들을 다 제공해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자신의 종이기에 자기 말 잘 듣고 있잖아요. 그래서 인간들이 기도하면 마귀가 다 들어주는 겁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영광을 스스로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에게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얻은 영광이지요. 물론 주님께서 짐승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이방인들의 관심, 즉 지옥 갈 자들, 짐승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의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 눈에는 이 세상의 것 외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 기도를 한번 들어 보셨습니까? 굳이 옆에 가서 들을 필요 없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기도 제목이 다 나와 있잖아요. 거기 어디에 복음 때문에 죽게 하옵소서가 있습니까?
남편 사업 번창, 자식 공부 잘하게, 가정의 화목, 고시 합격, 대입 합격, 일년 동안 무탈하게 등 이런 것들로 가득차 있지요. 인간들이 하는 행동을 보게 되면 모든 행동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입니다. 딱 마귀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과 일치해요. 그래서 마귀와 함께 둘째 사망 곧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집단속의 기도를 들여다보면 이들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철야기도나 새벽기도에 가서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들은 것은 있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고 기도를 하지요. 제가 우리 자식 살리려고 이 기도 하는 것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가 지금 죽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잖아요. 우리 가정이 화목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잖아요. 우리 남편 사업 성공해서 십일조 일 억 정도 드려야 우리 교회를 더 크게 지을 수 있잖아요. 우리 자식 이번에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이웃에게 전도하기 훨씬 수월하잖아요.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지금 좌파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어서 우리나라를 공산화 하면 안 되잖아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참 할 말이 없습니다.

둘 째 사망에 들어가야 할 근거를 계속 보여주고 있어요. 이들은 복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저들은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기도한다고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는다고 기도의 내용이 바뀔까요? 안 바뀝니다. 복음을 오늘 본문에서도 나오지만 비밀입니다. 비밀은 기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럼 누구 기도로 비밀을 알게 됩니까?

주님의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깨닫지 비밀을 듣는다고 그 비밀을 알 것 같으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다 구원받아야 하겠지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고 하면 자신들이 하는 기도가 죄인지 몰라요. 그들은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방인들이 구하는 기도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기도는 그칠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처음으로 기도한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기도하잖아요.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 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살려 달라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죽으면 되는데 아벨을 죽여 놓고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 이 두려움에서 나올 수 있는 기도를 살려달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자들은 이런 기도가 지극히 당연한 기도요 눈만 감으면, 엎드리면 나올 수밖에 없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이 육을 갖고 있는 한 포기 못합니다.

그러니 저주받아 마땅하잖아요. 그런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들은 절대 저주받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끌어당겨 기도에 항상 힘씁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여 하는 기도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눈은 위엣 것을 못 봅니다. 위엣 것이 안 보이기 때문에 위엣 것을 찾지 않고 땅엣 것만 찾습니다. 그 땅에 것에서 뭔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분명 골로새서 3:1절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위엣 것을 찾을 마음이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위엣 것은 땅에 사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에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땅엣 것을 구해야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것을 구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자들이나 하는 짓이잖아요. 돈이 중하지 뭣이 중하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들이 이것을 알기에 위엣 것을 땅의 것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부자되는 것, 건강한 것, 행복한 것, 더 이상 죄책감 들지 않는 것 등 모든 것을 이 땅의 것으로 천국을 만들어 버립니다.
제가 강남강의 할 때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마는 왜 하나님의 교회나 신천지나 다락방이나 구원파 같은 것들이 주장하는 천국은 이 땅 외에는 없습니다. 가정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기도와 주님의 기도가 전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이 말씀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마태복음 26:39절에 나옵니다.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흉내 낼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 끝에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하지만 그 속셈은 뻔하지요.
예수님의 기도는 순종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를 통해 인간의 모든 기도는 가짜임이 들통 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시는 말씀의 기도는 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는 전쟁하라는 겁니다. 쉬지 말로 전쟁하라는 겁니다. 누구와 전쟁입니다. 악마와의 전쟁입니다. 악마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까? 먹을 것, 종교적 능력, 세상 권세와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26장과 똑 같지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마음에는 원인데 육신이 약해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육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몸이잖아요. 매장 당했습니다. 지금 사는 분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 사십니다.

그래서 기도의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왜 감사가 들어갔는지 아시겠지요.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니 기도자체는 이미 주님의 승리, 주님의 다 이루심의 확정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가 기도해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완성 곧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 일들을 체험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실 바울이 요청한 기도는 감사가 될 수 없는데 감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위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성도들의 기도의 힘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걷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원하지 않아요. 지금 사도바울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니까 그러면 기도하는 교인들은 이 길로 안가도 되겠네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 아닙니다.

목사들이 선교사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하지요. 그러면 교인들은 선교헌금만 하면 됩니다. 왜 자신들은 복음 때문에 고난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선교사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본심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주님 홀로 죽으시지요. 저는 살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조차도 육신이 약해서 깨어 기도할 수 없었고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수 없었는데 제가 어떻게 가겠습니까라는 겁니다. 악마의 화신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이런 자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는 살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소원 아무나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소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기도하는 내용은 전쟁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목사님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못산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그런 식으로 설교합니까?

제가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했습니까? 주님이 사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우린 우리 몸에서 전쟁이 일어나지요.
내 자식 아픈 것이 중요하지 복음의 비밀이 전파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잖아요. 자식 , 손자 손녀 아파 죽을 것 같다면 기도 안 나오겠습니까? 집안이 망한다고 하면 망하지 않게 기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쪽 부분엔 자유해라고 하지 마세요. 주님은 온전한 것을 원하시지 흠이 있는 제물은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는 전쟁입니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해달라는 전쟁입니다.
우린 살고 싶은데 주님은 복음의 비밀 때문에 갇히기를 원하시고 복음의 비밀 때문에 죽임 당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주님이 그렇게 사셨기에 그리스도의 몸도 당연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복음을 알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오늘 말씀대로 기도하면 되겠네요. 그러시면 됩니다. 지속적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또한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매임 당해도 마땅히 할 말로써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기도하면 되는데 기도 안하지요. 왜 그럴까요? 이렇게 될까봐 두렵거든요. 혹시 다 잃어 버릴까봐. 혹시 미움받을까봐.

골로새서 1:9-12절을 봅시다.
기도 내용이 어떻습니까? 돈 안 되는, 명예 안 되는, 권력 안 되는 그야말로 성령 충만 받아 십자가의 길을 감사함으로 걷게 해달라는 기도내용입니다.
 
우린 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린 감히 이런 기도 흉내 내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우린 할 수 없는데 왜 이 기도 흉내 내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시겠습니까? 이방인처럼 기도하시겠습니까? 하세요. 하시면 그 기도가 이런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속에 주님이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런 기도를 감사함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는 확증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니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5-36).”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승리하셨음이 보여지는 자리가 성도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면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 겁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기도하신대로 다 순종하시고 그 기도를 이루셨습니다. 성도는 그 이루신 분, 즉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심판 주 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된 겁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사도바울이고 우리들입니다.

도살할 양같이 여김받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 속에 우리를 집어 넣으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감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의 성취 자리에서 나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