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04 18:27
골로새서 강해 57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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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강해 57

골로새서 3장22-4장1절

주인과 종

관리자 18-03-04 18:27
답변  
직원과 사장
골로새서 3장22-4장1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주님의 말씀이 너무 심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종으로 사는 것도,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억울한데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말씀은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난 번 어떤 분이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글을 올리셨는데 그 회사 사장이 너무나 훌륭한 사장님이라는 겁니다.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 중요한 것은 그 사장을 주님이 만들었습니다. 이게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겁니다. 우린 이미 성경도 알고 말씀도 알고, 인간이 어떠한 인간임을 다 아는 판에 꼭 그 사장 말 들어야 하는냐 말입니다. 그것도 모든 일에 말입니다.

능력있는 자신은 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들게 일해야 하고 능력없는 다른 사람은 편하게 직장생활하는데 이거 열 받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이 어려워요. 왜 어려운고 하면 모든 일이라고 하면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질문을 하잖아요. 사장이 불법적인 일을 시켜도 해야 됩니까?
성경이 뭐라고
합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것도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겁니다. 요즘 세상에 직장생활 이렇게 하는 사람 있을까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돈의 노예잖아요. 돈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직장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돈을 많이 빼 먹을까를 생각하지 사장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 안 읽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교회 안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왕이요 자신이 하나님인데 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이미 성경을 다 알고 있고 정답도 다 알고 있는데.

목사님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우린 알아요. 죄인이라는 말 하고 싶잖아요. 그것 다 안다고요. 그래서 저는 죄인처럼 돈에 미쳐서 교회고 뭐고 필요없이 돈만 벌면 살겠어요. 어차피 구원은 주님이 할 것이고. 이런 사람 한 둘이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면 이들은 말씀이 오늘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시간의식이 있잖아요. 과거에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오늘도 내일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님은 언제나 오늘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들에게만 들리겠지만 말입니다. 과거에 들었던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그것을 믿음으로 붙들고 있으니 오늘 하시는 말씀을 들을 마음이 있겠습니까?

돈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야만 살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저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내용을 보면서 그 밑에 사람들이 제대로 말씀대로 했다고 봐요. 불법을 잘 저질렀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요? 그래야만 멸망 받을 이유가 나오거든요.

사람들은 오늘 말씀을 지키면 구원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이 칭찬하실 겁니까? 이것을 기대하고 오늘 본문 말씀을 읽고 지키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주께 하듯 하려면 수준이 주님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인간이 주님의 수준에서 순종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사장이 불법을 저지르면 그것도 따라야 합니까?
따라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열 받을 사람 한 둘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불법이다 합법이다라는 것이 누구 기준입니까? 사람들 기준입니까 아니면 주님 기준입니까? 복음을 전해 보면 사람들이 자기 꼬라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있는 집안에서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래요. 지옥 갈 교육을 받아놓고 그 교육이 마치 천국백성의 삶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장합니다. 최소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사람관계가 형성될 수 있지 않는가라고 말입니다. 사람관계 형성해서 뭐하려고 합니까?

결국 자기 위치 확보, 자기 인정받기 위한 것 외에 뭐가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요? 복음은  주님이 전하시지 어떻게 자기가 전해요. 믿음 없는 티를 이런 식으로 드러 냅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알았다니 이제야 정답을 찾았다니라고 합니다.

24절을 보면 더 놀라운 말씀이 있지요.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주 그리스도를 섬긴다면 도리어 사장 시키는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이것이 우리들이 논리잖아요. 그러면 묻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슨 기준으로 사장이 시키는 일 중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기준이 뭡니까? 말씀이라고요. 말씀이면 모든 일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요. 그것도 주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사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요.

결국 자신이 몸 담아 왔던 환경속의 관습을 근거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다니엘서를 보면 오늘 본문과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를 느브갓네살 왕이 자신이 정한 진미와 자신이 마시는 포도주, 그리고 자신이 내려주는 쓸 것으로 이들을 삼년동안 비닐하우스 재배하려고 합니다. 비닐 하우스 재배하려는 이유 하시죠. 막 자라라고 비닐하우스 재배합니까? 아니죠. 적당한 온도, 영양분, 수분등을 제공해서 자신이 원한 식물이나 열매를 얻기 위해서잖아요.

느부갓네살 왕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장에서 찍어낸 자신의 종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이게 미래에는 복제인간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오늘 본문을 여기에 적용해 보면 왜 종인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왕의 진미를 거부합니까? 모든 일에 순종해야 되잖아요. 왜 말씀대로 안 삽니까? 안 사니 어떤 결과가 초래됩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지요. 우린 좋은 결과만 생각하잖아요. 문제는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미래를 알아요 몰라요. 모릅니다. 모르는 입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는가? 그 이유는 죽기 위해서 말했다는 겁니다. 제가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금신상에 절하라고 할 때 하지 않고 죽었잖아요.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한 자에겐 죽음밖에 없습니다. 지금 다니엘과 세 친구는 죽기를 원했지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죽기를 원하는 자는 사장 말을 듣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엔 납득이 안 되고 이해가 안가지요. 어느 누가 죽기를 원하고 직장생활하고 회사를 경영합니까?

납득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린 우리 구원중심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 중심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십자가의 피가 쏟아져 나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까? 어떻게 하면 영생 얻을까에 관심이 있다 보니 성경 말씀이 납득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제일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을 소개할게요.
예수님께서 장로들과 제사장들에 의해 잡혔습니다. 그들의 고소 내용이 진실 했습니까 진실하지 않았습니까? 거짓이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불의에 대해 강력하게 항거하고 물 위를 걸으신 그 능력으로 그 악한 자들을 처단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하셨습니까?

세상권세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언약을 완성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권세는 그 일을 위해 주님께서 주신 권세입니다. 그러니 충실히 말씀대로 예수님을 죽여야 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권세에 순종해서 죽으셨고, 다니엘과 세 친구는 세상권세를 거부해서 죽었습니다. 이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이 원형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보게 되면 다니엘과 세 친구의 왕명 거부는 곧 예수님의 왕명 순종으로 그 본질적 의미가 밝혀집니다. 즉 산 자들의 세상에서 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분이 온 우주의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권세를 악마가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 만만하게 시험하는 겁니다. 문제는 성도는 예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성도가 할 일은 자신이 메시야가 아님을 증거하면 됩니다. 자신이 메시야가 아님을 증거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죽였다고 하면 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것을 끄집어내기 힘들다고요?
우린 오늘 본문을 통해 벌써 머리를 굴립니다. 우리 사장은 돈 밖에 몰라요. 우리 사장은 자기 명예 밖에 몰라요. 우리 사장은 권력밖에 몰라요. 그러니 내가 그런 자들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까?
순종하지 마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려지고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절대 불의와 타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 꼬라지를 몰라요. 자신이 불의한데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자신이 악마의 자식임을 모릅니다. 왜 그렇다고 했습니까?

자신이 던져진 환경이 그에겐 절대적 진리가 되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환경을 못 벗어납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압니다. 아모서를 보면 공의를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공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공의를 내뱉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공의와 정의 때문에 멸절 당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인간들이 말씀대로 공의와 정의를 아무리 외쳐보았자 인간 살기 좋은 세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이 세상이 부조리해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 자체가 악마가 주인행세 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끼리 부조리 하다 아니다를 아무리 외쳐도 그 마지막은 십자가 제거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를 제거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행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 유업의 상을 줄게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두고 인간들은 모든 직장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장에게, 대통령에게, 국가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업의 상, 즉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유업의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성경말씀은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고 천국이야기입니다. 천국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십자가로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홀로 십자가 지셔서 승리하셔서 자기 백성을 만드시고 그 백성들에게 유업의 상을 선물로 주는 나라잖아요.

그렇다면 아들의 나라에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할까요?
필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오늘 말씀을 주신 겁니다.

어느 인간도 모든 일에 주님을 두려워하듯이 주인을 두려워하며 일할 인간 없습니다. 그러면 어차피 없는데 왜 이 말씀을 주셨습니까? 죄 지으라고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죄를 자신이 지을 수 있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씀은 말씀하신 분이 이루십니다. 죄가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나오는가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인간들이 주인 된 세상에서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그리고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주님은 모든 죄를 끄집어 내셔서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자랑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25절을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누가복음16:1-13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9절에 나옵니다.
많은 목사들이 이 본문을 갖고 돈으로 친구를 사귀라고 설교합니다.
많이 바치면 하나님께서 복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13절과 맞지 않아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하나님께 돈을 바쳐서 축복을 받아 내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돈을 더 사랑하는 행위가 되잖아요. 너희는 하인인데 누구의 하인이냐는 겁니다.
13절에 나오지요.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께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누구만 알아 들을까요?
성령 받은 자들만 알아듣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알아 들었을까요? 말이야 알아들었겠죠. 그런데 자신들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부수적으로 축복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기에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비웃었다고 해석하는 분은 주님입니다. 그러나 인간들 눈에는 이들의 주장이 옳아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살고 월세 사는 것이 좋습니까?

예수님의 비유 말씀의 방향이 확확 틀립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죠. 그러면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이 살기 위해 불의를 행했잖아요. 그래서 주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분명 불의했기에 청지기를 쫓아 내려고 해놓고 더 많은 재산의 손실을 가져다주자 칭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비웃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린 그런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하는 비유는 우리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유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당하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이 비유를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비웃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누굽니까? 주님이시잖아요. 이 주님은 누구를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까?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죄인된 자 자신이 불의한 청지기임을 아는 자들만 구원을 얻습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이 찾는 자들은 주인의 긍휼, 그 은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니 불의한 청지기만큼 주인의 긍휼을 잘 보여줄 자가 없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골적으로 죄를 지어줍니다. 바리새인들도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대로 살았기에, 정당하게 돈을 벌었기에 나는 의롭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돈을 사랑하는 자라고 주님께서 선언해 버립니다.

성도를 이 세상 권세 아래서 살아가는 이유는 너희는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임을 까발리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주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위해 직원을 부립니 까? 자기를 위해 부리잖아요.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안다면 어떻게 종들에게 직원에게 해야 합니까? 월급을 얼 만큼 주어야 합니까? 한달에 얼만큼 쉬게 해야 합니까? 52시간만 일하게 해야 합니까? 이건 성경 말씀 위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은 주인이 시키는대로 해야되요. 반대로 주인은 52시간만 시키면 됩니까? 아니지요. 일 안 시키고 자신이 일하고 직원에게 월급주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는 못합니까?

어설프게 흉내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흉내 내어 봐야 자기만 손해납니다.

제발 불의를 행하세요. ‘주인 말 듣지 마세요. 사장 말 듣지 마세요.’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 해도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장 말 잘 듣습니다. 그래서 지옥 갑니다. 누가 자신을 살리는지를 몰라요. 십자가에 피 흘리신 분이 자기 백성을 살리셨는데 그는 사장이 자신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을 막 부리세요. 그래야 죄인으로 드러날 기회가 생깁니다.
직원에서 너무 잘해 주면 자신은 의인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니 또 직원에게 막 대하는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다가 망합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 직원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이지.

이러나 저라나 자기영광을 위한 행위밖에 없습니다.

우린 이런 가시정글 속에서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런 복잡하고 피곤하고 머리 아픈 세상을 벗어나려고 하지 마세요. 그 곳에서 살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사장과 직원으로 마음껏 불의가 발굴 되는 인생이 될 때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