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1-27 17:41
2018년 1월 십자가마을 겨울 수련회 안내
 글쓴이 : 관리자 (117.♡.10.166)
조회 : 371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일 시: 2018년 1월 7일(일) - 9일(화)
장 소: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강 사: 이근호 목사
주 제: 열왕기하
회 비: 10만원 (유치. 초등생 5만원)

지역 책임자서울 경기: 이미아 선생 (010-9998-4171)부산 경남: 박병규 목사 (010-2323-3571)대구 경북: 이상규 집사 (010-2685-8211)광주 전라: 김을수 집사 (010-2627-7800)대전 충청: 김종인 집사 (010-8808-7111)울산 지역: 김병만 집사 (010-4379-1471)강원 지역: 정인순 목사 (010-2676-6823)그외 지역: 서경수 목사 (010-2962-7490)

수련회에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해당 지역 책임자께 12월 23일까지 신청해 주시고각 지역 책임자들께서는 24일까지 알려 주세요.

관리자 17-11-27 17:41
 117.♡.10.166 답변  
역사와 예언    
(2018년 겨울 수련회 교재)

Ⅰ 서론

1. 일상생활

우리는 나치가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한 아우슈비츠를 하나의 모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행위자들은 나치의 형 집행자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열차들의 복합 네트워크, 시체 소각실, 수감자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병참술, 의복의 분류와 배급, 금이빨 뽑기, 머리카락과 유골의 수집 등등.

이 일종의 공동체 안이 꼭 상냥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생명력에 의해 주체는 가려진다. 활기 넘치는 생명력이 약동한다. 그 시각, 다른 사회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흔히 군대의 일상이나 혹은 멋모르게 시집와서 혹독하게 시집살이 하는 어린 새댁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느 일상도 그 내부는 의외로 밋밋하고 차분하게 돌아간다. 전혀 부산떨 필요 없다. 사창가의 일과나 수녀원의 일과나 동시간에 같이 돌아간다. 긴장은 수시로 사그라지고 어느새 소멸되어 있다. 모두들 그렇고 그런 시간을 흘려보낸다.     

정해진 이유도 없이 움직이며 목적이라는 것도 늘 뒤늦게 의미 차원에서 붙여진다. 살아 있으니 그냥 사는 것이다.

오늘날 연속성과 지속을 보장해주던 사회적 구조물들은 점차 허물어져간다. 원자화와 고립화의 경향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에는 모두 서사(이야기)적 긴장이 있다. 사건들의 특수한 연결이 역사와 신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각 물체마다, 실체마다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가속화야말로 역사 이야기의 종말을 가져온 장본인이며 이는 의미 상실로 이어진다. 사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틀은 해체되고 각자 고립된 파편들이 되어 의미 없는 진공 속으로 어지럽게 날아다니게 되었다.

아무데도 구속되지 않는 절대적 활동성 보장이 오히려 시간의 무게를 잃게 만들고 세월이 값싸게 흘러간다. 인생도 그 물살에 같이 휩쓸려서 가볍게 떠내려간다.

의미의 중심은 인간이 어디엔가 묶여 있을 때나 발생하는 법이다. 중심에서 벗어나면 날수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두운 죽음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내 멋대로 산 것이 붕괴되지도 않는 딱딱한 점으로 쪼그라들게 만든다. 어디에도 처리해 주지 않는 쓸모없는 점, 깊이도 넓이도 없는 점, 버림받은 마침표다.  

따라서 최종 심판자의 초월성은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결정짓는다. 이 말은 곧 인간들이 자연 안에서 목표로 삼는 ‘인간의 자체 초월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세계 문명사는 쉬지 않고 ‘초월적 인간’을 시도하면서 달리고 있다. 

인간들은 그 초월성의 근거를 자연적 질서에서 찾고자 했다. 즉 ‘객관적 현실’을 다듬어 손에 쥐겠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거대한 ‘존재의 사슬’ 맨 꼭대기에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적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원인과 결과로 모든 존재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초월적 지평’이 조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지평’은 본인의 주관적 지평이며 그것을 가지고 모든 자연 과정을 아우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기에 다음과 같은 모순이 발생한다. 아우르고자 하는 전체가 참으로 전체를 빠짐없이 상호작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전체 중의 한 부분이 일자(一者) 행세를 하면서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로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결정하는 그런 일자(一者)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총괄해서 진리나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일부를 최종적 결정자로 정하는 것이다.


2. ‘일상’이라는 말의 왜곡

‘자본의 흐름’이라는 춤(운동)은 오늘날 사회의 전 범위와 전체 국가들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나라는 오늘날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자본은 참으로 시치미 뚝 뗀 모습으로, 신성한 무관심을 가지고 수익성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냉혹하게 추구한다. 여기에 정치적인 폭력보다 훨씬 더 섬뜩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폭력이 있다.

자본주의의 폭력은 더 이상 ‘악마적인’ 의도를 가진 구체적인 개인들에게서 기인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객관적’이며 익명적인 폭력이다. 문자 그대로의 개념적 폭력, 즉 자본이라는 개념을 앞장세우고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단지 추상적인 침묵의 보편성, 수많은 상품들 사이의 신체적 연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가치는 수동적인 교환의 매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 과정의 능동적인 요인이 된다. 자본, 곧 돈의 가치는 현실적으로는 화폐/상품을 수동적으로 취하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자신이 탄력을 받아 스스로 생명을 가진 주체처럼 행세한다. 

가치는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별하여, 스스로 자신의 타자성을 정립하며, 그런 다음 다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한다. 전체 운동은 가치 자신의 운동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상품들의 관계를 단지 표상하기만 하는 대신에 가치 자신과의 개인적 관계를 정립하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에게 돈을 바쳐야(투자해야) 한다. 그 외의 가치는 나오지 않는다.

자본은 가치의 자기 운동 속에서 자기 자신의 물질적인 조건들을 소급적으로 벗어나 새로운 자족적인 조건을 만들며, 그 조건들을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확장의 종속적인 계기들로 변화시킨다. 이로써 돈의 가치는 자기 자신의 전제들을 항상 뒤돌아서 재정립한다. 돈 벌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뒤늦게 정당화하면서 계속 전진한다.  

‘일상’이란 이 안에서 진행되고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을 말한다. 돈(자본)이 스스로 창출한 가치체계 속이 곧 오늘날 사람들의 일생이다. 주식가격이 춤추면 같이 춤추고, 주식가격이  애곡의 피리를 불면 모든 사회들이 속 쓰려 운다. ‘일상’의 주인공이 개인이 아니다. 스스로일상의 스케줄을 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돈이 인간의 주인이다.

밋밋하고 무심하게 돌아가는 그 대자연 속은 인간들이 조성해놓은 ‘객관적 현실’ 덕분에 한참 지옥이다.
 

3. 과연 우리가 인간인가?

인간은 노동하므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임을 노출하게 된다.

노동자가 힘들여 일을 하면 할수록 그가 자기의 건너편에 만들어 내는 소원한 대상 세계가 그만큼 강대해지고, 그 자신의 내적 세계는 더욱 허망해서 그 세계에 의존적으로 살게 된다. 종교를 닮아서 새로이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인간이 신 안에 많은 것을 넣어두면 둘수록 인간이 자기 자신 안에 갖는 것은 그만큼 적어진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에 주입한다. 그렇게 되면 대상에 주입된 생명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고 대상의 것으로 소외되는데 그 이유는, 그렇지 아니하면 자아의 이상형답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활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는 더욱 더 많은 ‘자기 것으로의 대상’을 상실한다. 그의 노동 생산물은 그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생산물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 자신은 그만큼 더 빈약해진다.

노동자의 대상으로부터 소외는, 경제학의 법칙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즉 노동자는 보다 더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그가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적어지고(가격이 계속 높아지게 되니), 보다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면 낼수록 그 자신은 그만큼 무가치하고 시시한 것이 되고, 그 생산물이 문명적이 되면 될수록(세련되면 될수록) 그는 더욱 더 야만이 되고, 노동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기계 조작이 많아지면 질수록) 노동자는 무력하게 되며(더 많은 기술을 사업자는 요구하게 되고), 노동이 지식적이 되면 될수록 노동자는 지성이 결여되어(인간의 지식이 인공지능을 못 따라간다) 인간은 세상의 노예가 된다.

그 결과 인간은 먹거나 마시거나 생식활동을 하는 그의 동물적인 기능들 속에서 유지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며, 집에서 쉬거나 옷치장을 하는 일에서 자기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낀다. 자신은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다는 착각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자발적 노예’다.

원래 ‘인간다움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노예로 압축이 된다.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부하며 자존감의 표시로서 ‘인간이다’고 여겼던 것으로 인해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못 느낀다. 동물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이 곧 동물적인 것이 된다. 

이처럼 인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행세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가증스럽다. 왜 인간도 아닌 게 자꾸 인간다움을 추구하는가? 차라리 개에게 배우는 것이 낫다. 개는 개라는 자기 동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4. 발생되는 딜레마

자유주의 사회는 관용과 자유선택이 지상가치로 설정되어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 스스로 자연에 대항해서 자신만의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이런 열망으로 인해 사회는 자유의 가치를 보편적 진리로 추앙했다. 사회적 통제와 지배는 더 이상 주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역설이 있다. 마음껏 개인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환경이 ‘자유가 소용없는 것’임을 체험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보편적 복지의 답답함을 벗어나서 스스로 복지 제공자를 선택하겠다고 나서는 순간부터(프리랜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잠재성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대신 어쩔 수 없이 매 2년마다 새롭지만 불확실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자녀 교육을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할 때(공교육을 마다하고 사교육이나 대안학교에 자녀를 맡기는 순간), 우리는 이제 자기가 소유한 자원의 투자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본가와 같은 ‘자기 기업가’의 대우를 받게 된다. 스스로와 싸우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경영자의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교육, 의료, 여행 등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부가된 ‘자유 선택’이라는 맹폭격을 당한다.

이는 곧 우리가 충분한 정보를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선택하는 것이 강요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리의 자유를 견딜 수 없는 불안을 야기하는 부담을 경험하게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를 행사하겠다고 나섰다가 불안을 떠안게 되는 이 지독한 순환에서 탈출할 수 없다면,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 할수록 점점 더 온통 자유뿐인 이 체제의 노예가 되어 간다.

이 자유주의적 성과사회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사회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기 착취가 심화되는 것이다. 스스로 밤샘 근무하고 1년 내내 휴무를 모르고, 쉬는 것을 오히려 겁낸다. 자유주의의 자기 착취적 질서 속에서 사람들의 공격성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겨냥한다. 이러한 자기 공격성으로 인해 진정한 착취자는 외부의 무능력한 정치인이 아니라서 본인들은 점차 우울증 환자가 된다.

이런 자유주의 체계의 주체는 자아 최적화의 명령, 즉 더 큰 성과를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강제성 속에서 몰락해간다. 힐링(Healing)이 아니라 킬링(Killing)이다. 어느새 길들여진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문제는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꿈꿀 수 있다. 나는 소망할 수 있다!”가 아니다. 자기 말고 달리 공격할 대상자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저주하고 자기를 쳐야하는데, 자기 속의 본인도 통제 못할 세력이 이 공격을 수긍하지 않고 되받아친다. 

이 수상한 힘은 언제 인간 속에 들어와 인간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를 고대하고 있었는가? 이는 곧 인간의 주인이 따로 있어 그동안 줄곧 인간을 조종해 왔다는 것이다. 이 괴물이 결정을 내리고 인간에게 그 결정에 대해 따를지 말지를 떠넘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의식은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을 무마하는 식으로 ‘자기 의(義)’를 최종적 의미로 챙기려 한다.

괴물은 인간에게 내부의 음성을 요구하고, 인간은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욕망을 발동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자꾸만 선과 악으로 분열된다. 변명과 핑계를 동원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 알 수 없는 미지의 추궁에 온전치 못함을 자각하면서 인간은 스스로 무너진다.


5. 흔적과 증언

역사는 잠재적으로 드러내기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동성을 지니고 있기에 사진(寫眞)적인 기능과 서사(스토리)적인 기능이 나타난다. 사진적인 기능을 ‘흔적’이라고 한다면 서사적 기능은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흔적’은 ‘원천-에 의한-재현’이라고 한다면 ‘증언’은 ‘사용-에 의한-재현’으로, 역사의 숨겨진 주인공의 의도를 나타내는 방식이며 이는 곧 ‘말씀하기’다.

‘흔적’은 자연적인 지평에서 관찰이 가능하지만 ‘증언’은 다가서는 인간을 겨냥해서 뭔가 의사소통을 성시시키려 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 환경이 마련된다. 이 말은 곧 ‘의사소통’이 성사되지 못하고 관계가 단절되는 점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면 이는 그저 ‘흔적’일 뿐이다. 하지만 ‘흔적’ 속에서 ‘증언’의 소리가 들린다면 이미 역사의 주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다. ‘흔적’은 과거 역사를 시대적으로 이미 의미를 상실한 허구로 처리하게 된다. 반면에 ‘증언’은 그 자체로 ‘역사의 의미’를 이전시켜 새로운 ‘증언 스토리’로 만들어진다. 곧 증언자의 재현 안에서 신의 등장을 시사한다.

‘흔적’은 사라지지만 ‘증언’은 내용의 완성을 내부에서 끌어올린다. ‘흔적’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증언’은 상상력의 허구성을 실체를 가지고 지적한다. 인간은 단지 역사의 ‘흔적’에 불과한지 아니면 ‘증언자’인지를 역사 자체가 묻고 있는 것이다. 
    
‘흔적’은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 틀에 묶여 있는 신세이지만, ‘증언’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태초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선지자의 최종 주자인 세례요한을 보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

오늘날의 성도는 바로 이런 자들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Ⅱ   본 론

1. 엘리사 선지자 

엘리사는 여호람(12년간 재임, 왕하 3:1) 때 시작해서 예후(28년간 재임, 왕하 10:36), 여호와아스(17년간 재임, 왕하 13:1)를 거쳐 요아스 때에 죽었으니 약 50년간(BC 850-800) 활동하였다.

그의 기적은 대략 11가지이다.
①차고 넘친 과부의 기름병(왕하 4:1-7) ②아들을 얻은 수넴 여인(왕하 4:8-17) ③되살아 난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 4:8-17) ④독이 든 국을 깨끗이 함(왕하 4:38-41) ⑤일백 명을 먹임(왕하 4:42-44) ⑥문둥병자 나아만을 고침(왕하 5:1-19) ⑦게하시의 죄 지적과 심판(왕하 5:20-27) ⑧잃어버린 도끼를 도로 찾음(왕하 6:1-9) ⑨벤하닷의 계획을 밝힘(왕하 6:8-12) ⑩아름 군대를 사로잡음(왕하 6:14-23) ⑪포로 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 사마리아를 구함(왕하 6:24/7:20)

엘리야의 선지학교는 엘리사 때에 와서 더욱 번창했다. 엘리야가 길갈(왕하 2:1), 벧엘(왕하 2:3), 여리고(왕하 2:5)에 선지학교를 세웠다면 엘리사는 그것들을 더욱 발전시켰다.


2. 북 이스라엘과 유다 나라의 공존시기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너무도 무능한 통치자였기에 2년 만에 그 동생인 여호람에게 위를 물려주어야만 했다. 여호람은 모압에 대한 통치권을 또 다시 얻기 위하여 전투를 계속했는데 이때에 에돔 족속들과 유다의 여호사밧으로부터 후원을 얻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연합군이 모압 왕이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장면을 목격한 후 스스로 퇴각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왕상 22:41-53/왕하 1장-3장).

여호사밧(유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는 그의 아들 여호람(혹은 요람)이었다. 여호람은 에돔의 통치권을 상실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는데, 아하시야는 아람과 벌인 다른 전투에서 또 다시 여호람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연합 전선을 폈다. 여호람은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게 되었으며 그가 회복되어 갈 즈음, 유다의 아하시야가 문병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왕하 8:16-29).

열왕기하 9:1-3은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보내어 예후를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후는 아하시야(유다)가 여호람(북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시기를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는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차례로 죽인 후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다.

예후는 계속하여 바알 신전에서 그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세벨을 처단하였으며, 아합의 70명의 아들과 또한 아합과 가까운 친척과 친구, 그리고 제사장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왕하 9,10장).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후로 말미암아 기대한 만큼의 큰 이득을 얻지는 못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후에 그 점을 신랄하게 비난하였다(호 1:4-5).

예후는 아람 군대와 싸워야만 했다. BC 841년 앗수르는 다메섹을 포위 공격한 후 주변 지역들을 파괴시켰으며 예후에게서도 조공물을 취하여 갔다. 후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물러 받았다(왕하 10:35).

남쪽 유다 나라에 아달랴 라는 악한 왕후가 있었다. 그녀는 6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였는데, 그녀는 초기에 다윗의 후손을 없애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어린 아들 요아스(혹은 여호아하스)는 숙모(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부인)의 도움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6년 동안 성전에 숨겨져 있었다(대하 22:11).

요아스가 성년이 되기까지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섭정을 했다. 바알의 제사장인 맛단이 죽임을 당하였고 우상들과 제단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요아스는 23년간의 재위 기간을 통하여 성전을 대폭 수리하였다.

다메섹 왕 하사엘이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쳐들어와 갓을 함락하였다. 요아스는 궁전과 성전에서 거둔 금은보화를 주고 하사엘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요아스의 신복들은 그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그를 죽었으며 그 아들 아마샤가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왕하 12장).
 
아마샤는 에돔의 통치권을 또다시 획득함으로써(왕하 14:7) 그곳의 광물자원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마샤는 교만해서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싸움을 걸었고, 요아스는 아마샤를 회유하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으나 실패하여 결국 유다는 초토화 되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으며 성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약탈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다 성읍의 진지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데려갔다. 아마샤는 모반한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아들 아사랴(혹은 웃시야)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왕하 14:1-22).

아사랴(웃시야)는 BC 783-742년까지 유다를 통치하였는데, 비슷한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람 2세(BC 786-746)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두 왕국은 크게 번영하였으며, 이때의 두 왕국의 세력을 합치면 다윗의 통일 왕국 때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아사랴 왕은 문둥병에 걸렸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된다(왕하 15:7).

여로보암 2세(북 이스라엘)가 통치할 동안 북 왕국은 인근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군림하였으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소수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일반 백성들에게 착취와 희생을 강요함으로써 온갖 불의와 부도덕이 판을 치게 되었다. 그래서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을 향하여 심판과 파멸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여로보암 2세가 BC 746년에 죽고 난 뒤 왕조의 혼란시대가 찾아오게 된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는 겨우 6개월간 통치를 하고 난 후 살룸에게 살해당한다. 살룸은 왕이 된지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한다. 므나헴은 자기를 배반한 답부아의 성읍에 쳐들어가 임신한 여자들에게 잔인한 보복 행위를 가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므나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에 올랐으나 얼마 못가서 베가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는 브가히야가 앗수르에게 예속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베가는 약 5년 간 통치하였다(왕하 15:8-31).

유다 왕 요담은 약 7년 동안 어느 정도 성공적인 통치를 했다(왕하 16:l-20). 이 기간에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앗수르와 싸우기 위해 요담과 동맹을 맺은 후 아하스(요담의 아들) 왕에게도 이 일에 가담할 것을 제의한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 제의를 거절해 버린다. 이에 이스라엘 왕 베가와 다메섹 왕 르신이 합세하여 아하스를 제거하고 그 대신 자기들에게 협조할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그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장차 이스라엘과 아람은 유다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앗수르가 아람과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에 덧붙여 그는 유다도 결국 앗수르에 의해 침략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사 7장-8장).

어쨌든 아하스는 다시 한 번 성전과 궁전에 있는 금은보화들을 앗수르로 보내어 그들의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은 아하스의 호소나 그 약조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행동을 취한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이 때 앗수르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된다.

유다는 이 재난을 잠시나마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이 일에 큰 희생이 요구되었다. 비록 그들은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 대가로 예루살렘 성전에 앗수르의 신상들을 두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속국가가 되어야 하는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제 북 이스라엘 베가는 앗수르의 봉신 왕(속국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남은 지역들을 관할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호세아에게 살해됨으로써 왕위를 빼앗기게 된다(왕하 15:30). 앗수르는 이스라엘로부터 상당한 분량의 조공을 받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허락해 주었다.

북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은 8년 동안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으나 그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굽과의 접선을 시도했다. 그는 살만에셀 5세가 디글랏 빌레셀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을 계기로 조공을 더 이상 바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앗수르의 새 왕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이로써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한다. 그 후 이스라엘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추방되고 그 대신 앗수르 제국에게 뽑혀 온 사람들이 각처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남아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후손들이 ‘사마리아인’들이다.


3. 북 이스라엘 멸망 후의 유다 왕국 (BC 722-586)

아하스의 쇠퇴한 정권을 이어받은 히스기야는 29년간 통치했는데 다윗과 같이 행했다는 극찬을 들었다. 히스기야는 복귀하는 즉시 그의 아버지가 폐쇄했던 성전을 열어 정결케 하고 모세의 법에 따라 제단을 쌓음으로 유다 왕국이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분명히 선포했다. 또 이전 왕들이 오랫동안 경시했던 유월절을 다시 선포하고 북 이스라엘의 사람들까지 초청하여 함께 제사하기를 원했다(대하 30:1). 그는 모든 산당들을 파괴하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의 형상을 본뜬 우상까지도 ‘느후스단’이라고 말하며 분쇄해버렸다(왕하 18:4).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반(反)앗수르 정책을 썼다. 그러나 사르곤 2세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에는 직접적으로 대항치는 않았는데 그것은 사르곤 2세가 자신이 정복할 나라의 국민들을 서로 다른 곳에 이주시켜 의도적인 통합 제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르곤의 아들 산헤립이 왕위에 오르자 히스기야는 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반앗수르 정책을 써 애굽과 두로, 아스글론과 에글론이 함께 반앗수르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산헤립이 동맹 국가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을 포위한 후 자신은 라기스에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부하 랍사게를 보내어 히스기야의 항복을 강요했다.

이에 히스기야는 은 3백과 금 30달란트를 바치고 화해를 요청했으나 산헤립은 만족하지 않고 계속 대군으로 위협하며 항복할 것은 종용했다. 이렇게 곤궁한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의 예언에 힘입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앗수르 병사 18만 5천이 죽는 기적과 함께 산헤립을 물리치게 된다(왕하 19:29,31-35).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은 이 전쟁 기간 중에 되어진 일인데 그가 간절하게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앗수르로부터의 구원과 더불어 15년간의 삶도 허락하셨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BC 686-642)는 55년간을 통치하였으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극한 범죄를 저지르고 마침내는 앗수르 왕의 포로로 잡혀갔다. 그는 거기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유다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 이후에 그는 성전에서 이방 제단을 제거하고 진실하게 예배에 임한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2년간 통치 후 암살당한다.

그 이후 요시야가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할 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몰락 상태에 있었고 더 이상 앗수르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었다. 요시야가 30년간 통치할 때는 유다 역사상 가장 큰 태평성대를 누리는 시기였다.

그는 통치 8년 즉 16세가 되었을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가졌고, 20세가 되었을 때는 온 유다와 이스라엘 북방까지의 모든 우상과 산당을 제거해 버렸는데 이 개혁을 무려 6년 동안 줄기차게 단행하였다.

이 개혁의 의지는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함으로써 더욱 강하게 시행될 수 있었다. 즉 성전을 수리하는 동안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서기관을 통하여 읽게 하니 왕은 옷을 찢으며 회개했고, 온 백성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워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기로 서약했다(대하 34:29-38).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요시야는 철두철미한 개혁과 정화를 단행하여 그때까지 잔존해 있던 모든 우상과 산당과 힌놈 골짜기의 몰렉 제사(어린아이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와 남색들을 분쇄하고 이방의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들의 뼈를 불살랐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끝난 후 율법의 규례를 따라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는데 이렇게 거룩하고 성대한 유월절 준수는 사사시대 이후 처음이었다(왕하 23:22).

신흥 바벨론과 메데의 연합군에 의해 몰락해 가는 앗수르가 다시 마지막 힘을 가다듬어 하란을 탈환하려는 전쟁을 벌였을 때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애굽의 느고는 하란에서 앗수르를 도우려고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때 반앗수르 정책을 편 요아스는 애굽 군대와 충돌하여 므깃도에게 접전 중에 전사한다.

요시아의 뒤를 이어 여호와아스(BC 609)는 애굽 왕에게 폐위당하고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BC 609-597)은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 세워진 괴뢰 정부로 많은 의인들을 살해했으며 급기야는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태우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던 악한 왕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느부갓네살 2세는 애굽의 원조를 구하여 반란을 꾀하는 여호야김을 예루살렘에서 죽인다. 또 그 이후 BC 597년 다시 공격을 받은 여호야긴 왕은 모든 왕족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고 느부갓네살이 요시야의 셋째아들 맛다니야, 즉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운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반(反)바벨론 운동을 거세게 일으킨다. 시드기야는 결국 반바벨론 자들에게 설득을 당하여 애굽에게 원조를 청해 반란을 일으키나 BC 588년 느부갓네살이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포위하니 포위 2년 후인 BC 586년 예루살렘은 함락된다.

그 후 바벨론 왕은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남은 자들을 위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운다(왕하 25:22). 이로써 유다 왕조는 20대 시드기야를 마지막으로 340년간의 왕국 통치를 마감하게 된다.


Ⅲ  결론

계시는 쏟아지는데 출처를 모른다. 그런데 말씀을 거부하니 이스라엘을 향하여 처벌이 주어진다. 이스라엘 역사가 계시에 의해 요동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곧 계시의 표현인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해야만 하는 일은 ‘천국 문’이 닫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무도 열 수 없고, 존재함도 알 수 없었던 그 ‘천국 문’의 흔적은 예언에 의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철거될 때 드러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존속하기 위해 간절하게 투쟁한 ‘진심어린 거짓’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나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천국으로 통하는 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존하려고 분투노력하는 ‘처절한 몸짓’이 필요하다. 그것이 ‘천국 문’을 짓뭉개고 ‘흔적’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로써 복음에 상처를 입힌다. 이 상처가 계시의 출처다.